(경주 6 ) 596
무첨당(無忝堂)과 심수정(心水亭)
역시 보물로 지정된 무첨당은 물봉골 길을 따라가다 우측 제법 높은 지대 위에 있다. 회재 이언적의 종가인 여강 이씨 종택의 별당으로 주로 제사를 지내는 제청의 기능 외에 독서와 휴식, 손님 접대와 문중 회의 등의 목적으로 주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규모는 아담했지만 누마루를 들여 격을 높였다. ㄱ자형태의 집으로 서쪽에 정면 1칸, 측면 2칸의 온돌방과 바로 이어서 옆에 정면 3칸, 측면 2칸의 대청, 정면 1칸, 측면 2칸의 온돌방을 두었고 서쪽 끝 온돌방 앞에는 정면 1칸, 측면 2칸의 누마루가 설치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누마루를 들일 경우 건물 전체를 상당부분 들여 올려야하기에 마당과의 단차가 컸다.
누마루가 있는 집과 아닌 집의 차이는 그냥 보기에도 차이가 크고 짓는데 비용도 많이 들어가기에 사대부집이라도 권세가이거나 부자가 아닌 경우는 생략하는 경우가 많기에 이 점을 상식적으로 알아 두시면 좋을 듯싶다. 누마루는 삼면이 개방되어 경치를 바라보거나 풍류를 즐기기에 좋고 바깥주인의 권위를 드러내는 공간으로 사용되었다. 거주하는 공간인 집에서 좀 더 자연과 가까이하면서도 풍류를 즐기고자 했던 선조들의 지혜가 녹아 있는 건축 양식의 하나라는 것도 추가로 알아 두셨으면 좋겠다.
무첨당을 보면서 별당을 둘 정도로 이씨 가문은 사람 수도 많았고 찾는 손님도 많았던 것으로 추측된다. 지금은 관리 상태가 좋지 않아 좀 더 시간이 지나면 제대로 존치 될 수 있을까 할 정도로 쇠락해 가는 느낌이 들었다. 보물로 지정된 문화유산을 이렇게 관리해도 되는지 의문시 될 정도였다. 무첨당 앞마당에 흐드러지게 핀 목련이 쇠락해가는 무첨당을 안타까워하는 듯이 꽃잎을 하나씩 떨구고 있었다.
심수정(心水亭)은 벼슬길을 마다하고 형인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을 대신하여 어머니를 극진히 모신 동생인 농재(聾齋) 이언괄(李彦适, 1494~1553)을 추모하여 지은 정자로 1560 년경에 세워졌지만 화재로 소실 된 것을 1917년에 다시 지었다고 한다. 농재란 “번잡한 세상에 뜻을 두지 말고 귀먹은 사람처럼 살아 가겠다”는 생각을 담아 이언괄 자신이 직접 지었다고 한다. “마음을 물과 같이 가지라”는 뜻이 담긴 심수정이라는 이름과 더불어 이언괄의 마음 세계를 짐작 할 수 있었다. 거대한 고목으로 자란 회화나무가 집을 삼킬 듯이 담장에 바짝 붙어 자라고 있어 조금은 기괴한 모습이지만 정자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아주 그만 일 듯싶었다.
완만한 성주산의 경사지에 자리 잡고 형 이언적을 대신해서 어머니를 극진히 모신 농재 이언괄이 살던 향단을 마주하고 서 있어 두 건축물이 교감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관가정과 향단, 무첨당을 품고 있는 설창산과 심수정을 품고 있는 성주산이 서로 마주보고 있는 완만한 구릉지에 조성된 양동 마을은 그 외에도 많은 건축물이 있어 모두 둘러보려면 하루 정도로는 어림없고 2,3일 정도는 시간을 내야 할 정도로 볼 것이 많았다.
500여 년을 사이좋게 집성촌으로 살아온 역사가 천 년 ,만 년 이어지기를 기원했다. 전통은 고리타분한 것이라고 치부 할 수도 있지만 문화유산은 오래된 미래이고 우리나라의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가슴에 다시금 새겼다. MZ 세대를 비롯해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찾는 양동 마을이 좀 더 체계적으로 관리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컸다. 예산 탓으로만 돌리지 말고 유구한 역사를 지닌 문화유산 그리고 실제 사람이 살며 생활이 이루어지고 있는 세계문화 유산은 더더욱 그리해야 하지 않나 싶다.
(2024.3)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걷는 것은 언제나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 한계를 최대한 넓힐 때 우리의 삶 역시 넓어지기 때문이다(게리켈러, 원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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