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청 18) 645
장터목 대피소




어깨에 맨 배낭이 무거워 25분마다 쉬다 걷다 진행하니 무거운 배낭도 서서히 적응이 되었지만 시간은 지체 될 수밖에 없었다. 참샘을 지나면서부터 일부 수목들이 가을 옷으로 갈아입고 요염한 자세로 웃고 있었다. 본격적인 단풍은 아니지만 녹색의 잎들만 보고 오르다 모처럼 노랗게 물든 단풍을 보니 마음이 새로워졌다. 2주 정도 지나면 이곳은 아마도 별천지로 바뀔 것이다. 그때가 되면 아마도 지리산은 밀려드는 사람들로 몸살을 앓을 것이다.
단풍은 제대로 즐기지는 못했지만 한갓진 산행을 하게 되어 지리산을 오롯이 느껴가며 산행을 할 수 있어 좋았다. 호젓한 산길을 우리일행들만 오르고 있다는 느낌이 뭔가 새로웠다. 간혹 하산하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며 어디서 왔는지 물어보는 재미도 있었다. 인천, 부산, 서울 등 지역도 무척 다양했다. 서로 지리산에서 한 마음이 된 듯한 느낌이 들었고 오직 대화는 산과 관계된 것으로 이루어져 다른 잡념은 침범할 틈이 없었다.
모처럼 머릿속도 정화되고 몸도 새롭게 태어나는 기분이 들었다. 장터목대피소 1.5km을 남겨두고 비가 조금씩 내리더니 갑자기 세찬 폭우로 변했다. 재빨리 우산을 꺼내 쓰고 배낭도 커버로 씌웠지만 워낙 많은 비로 소용이 없었다. 등산로는 순간적으로 빗물로 가득찼고 작은 개울을 이룰 정도로 순식간에 상황이 변했다. 방수 등산화도 소용이 없었다. 옷에 비가 배어 흐르니 양말은 물론 등산화 내부도 물컹물컹했다. 일행들 모두 비 맞은 생쥐 꼴이 되었으나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산에서 그것도 지리산에서 이정도의 비 정도는 맞으며 산행하는 것도 좋은 추억이 되지 않을까 했다. 다리가 점점 무거워져 가는 느낌도 아주 오랜만에 경험했다. 시간을 보니 벌써 산행을 시작 한지도 4시간이 지나가고 있었다. 오르는 도중 중간에 쉬면서 가져온 간식들을 먹었기에 배는 고프지 않았지만 힘든 표정들이 역력했다. 마지막 남은 힘을 단전에 모아 용틀임을 하고 10여 분 정도 더 걷자 비가 서서히 잦아들며 사위어지더니 멈췄다. 우산을 접고 10여 분 더 가자 드디어 장터목 대피소가 나타났다! 진정한 반가움이란 이런 것인가 했다. 모처럼 느껴보는 반가움이 힘든 산행의 피로를 한 순간에 날려 버렸다.
(2024.10)
침묵으로 성인들이 성장했고 침묵에 의해 하나님의 능력이 그들 안에 머물렀으며 침묵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신비가 그들에게 알려졌다(성소은, 선방에서 만난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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