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청 20) 647
장터목 대피소 풍경





전투식량은 보기보다 맛은 없어 일행들 모두 조금씩 남기는 실례를 범했다. 대신 총무님이 끓여준 어묵 탕으로 배속이 뜨거워지고 든든해져 오늘밤은 잠을 잘 잘듯했다. 식사와 침구 정돈 등을 모두 마쳤는데도 저녁 7시가 채 되지 않았다. 수건에 물을 묻혀 고양이 세수를 하고 나니 그런대로 샤워를 하지 않아도 견딜만했다. 매일 머리감고 샤워하는 습관을 가졌음에도 몸은 대피소 환경에 금방 적응했다. 머리를 감지 않아도 샤워를 하지 않아도 전혀 불편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나도 모르는 내 몸의 적응력이 놀랍기까지 했다.
공동생활을 해야 하는 장소여서 크게 떠들 수도 없어 작은 소리로 잠시 대화를 나누다 더 이상 할 일이 없어 모두 일찍 가져온 침낭을 깔고 침상에 대자로 누웠다. 10분도 되지 않아 잠이 쏟아 졌다. 약간의 시끄러움이 오히려 자장가 역할을 했다. 자는 도중 중간에 깨보니 11시 ,잠시 일어나 소변을 해결하러 밖으로 나가자 운무가 가득하고 바람도 세게 불고 있었지만 비는 오지 않아 다행이다 싶었다. 바람은 마치 봄바람처럼 따스했다. 추울 것 같았는데 따뜻한 봄바람을 맞으니 잠시 아늑한 느낌이 들었다. 내일 산행은 문제없을 듯했다.
다들 잠들은 잘 자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은 깨어 있는 듯했다. 대피소 환경이 아직은 어색했으리라. 다시 잠을 청하자 금세 잠이 들었다. 딱딱한 침상으로 인해 몸이 배겨 자주 뒤척였지만 모처럼 지리산의 품안에서 자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은 무척 편안하고 안온했다. 내가 지리산을 택해 온 것이 아니라 지리산 산신께서 우리를 이곳으로 불러 모으고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를 먼발치에서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이 이곳에 있는 내내 느껴졌다. 큰 자연과 인간은 결코 남이 아니라 한 몸이라는 것을 깨닫게 했다.
새벽 5시 저절로 눈이 떠졌다. 많은 사람이 머무는 곳임에도 정적이 감돌았다. 이상하게도 코고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모두들 지리산의 품안에서 모처럼 숙면을 취하는가 싶었다. 슬그머니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비는 그쳤고 짙은 운무가 주변을 더욱 자욱하게 물들이고 있었다. 세게 불던 바람도 불지 않았다. 정적과 고요가 장터목대피소를 호위하고 있었다. 맑은 날이었으면 쏟아지는 은하수를 볼 수 있었을 터인데 하는 진한 아쉬움은 있었지만 비가 오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싶었다.
(2024.10)
인간은 비겁과 용기, 권력욕과 정의감, 욕정과 생식, 질투심과 공명심 등 서로 모순되는 능력을 동시에 갖추고 있는 존재이다(에드워드 기번, 로마제국 쇠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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