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원 3) 455
철조 비로자나 불좌상
철조 비로자나 불좌상은 여느 사찰의 불상과는 다르게 왼쪽 집게 손 가락을 오른쪽 손바닥으로 움켜쥐고 있는 모습이 특이했다. 미소를 띈 갸름한 얼굴은 부처가 아닌 잘 생긴 선비의 모습을 닮았다. 검은 색 불상이라는 독특함과 신라 말에 주조된 아주 오래된 철불 이기에 희귀성이 고려되어 국보로 지정된 듯했다. 보물과 국보는 종이 한 장의 차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일반인은 쉽게 느낄 수 없는 분명한 차이가 있어 보였다. 다시 말해 풍기는 격조가 달랐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아닌 비로자나불을 모셨기에 대적광전이 대웅전을 대신하고 있었다.
도피안사는 규모는 아담했지만 국보와 보물을 지녔기에 찾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철원 지방을 대표하는 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자리 잡은 터는 안온했고 평화로운 기운이 가득했다. 전체적인 사찰 배치는 꼭 필요한 건축물로만 배치해 공간감은 답답하지도 허전하지도 않았다.
도피안사는 기원 815년 통일신라시대 경문왕 5년에 도선 국사가 창건하였다고 한다. 철조 비로자나 불좌상 뒷면에 139자로 된 글자가 돋을새김 되어 있다고 하는데 불상의 조성연대를 비롯하여 사찰의 건립 배경까지 적혀 있어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고 했다.
도피안사는 그 당시 도선 국사가 신라 말 혼란스러운 나라의 정세를 바로잡고 어려움에 빠진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해 신앙조직 겸 농민 공동체인 향도(香徒, 화랑도로 추청) 1,500여 명과 함께 건립하였다고 한다. 신라 말 격변기를 맞이하여 풍수에 정통한 도선 국사가 흔들리는 불교 교단을 재정비하고 나아가 나라를 안정시키고자 전국의 사찰을 건립 시 풍수사상에 근거하여 지었다고 한다. 모든 터가 풍수에 좋은 터가 아니기에 이를 보하는 차원의 비보풍수를 접목하였다고 하며 도피안사 또한 같은 맥락선상에 있다고 했다.
국토를 하나의 도량으로 보고 사찰과 사탑을 세운 그의 사상이 단연 도드라졌다. 국내에 오래 전 세워진 사찰 중 많은 사찰의 창건자로 도선 국사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음은 풍수사상이 아직도 유효하다는 반증이지 않을까 싶었다. 한편으로는 도선 국사가 활동한 시기가 불교 신앙의 전성기 시절임을 추측해 볼 수 있음과 동시에 수많은 향도가 참여한 것을 보면 철원지방은 그 당시에도 곡창지대로 꽤 부자 지방이었음을 어림 추측 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했다.
(2022.9)
긍정, 감사의 마음으로 주위를 살피는 것이 진정으로 가족과 자신을 위하는 일이다
(법륜, 스님의 주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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