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1) 467
20여 년 간의 긴 기다림
아내와 결혼 후 20여 년이 지난 어느 화창한 봄 날, 아내와 새로 신설 된 집 근처 성당 예비신자 교리 반에 가입한 후 세례를 받고 1년도 채 안되어 견진 성사를 받는 일련의 과정을 거치며 신앙이란 과연 무엇이며 종교는 인간의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다시 한 번 차분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이신 장모님께서 우리 내외의 결혼직후 우리가 내심 성당에 다니길 간절히 바랬음에도 겉으로는 일절 한 말씀도 없으셨다가 결혼 후 20여 년이 지난 어느 날 우리 내외가 성당에 다니기로 했다고 말씀을 드리자 기다리셨다는 듯이 아주 기쁜 마음으로 축하해 주셨던 그때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우리 내외가 언젠가는 성당에 다닐 것이라는 것을 예견 하시고 이미 세례명도 만들어 두셨다고 했다.(그런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우리는 큰 불효를 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세례와 견진 성사의 과정을 순탄하게 마친 것 역시 장모님의 정성 어린 배려와 기도 때문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신설본당(방이동성당)이 생긴 이후 첫 세례 행사에 참여하는 영광도 얻었고 신설본당이다 보니 봉사자들이 부족하여 우리가 독서 단의 역할까지 부여 받은 영광을 받았으니 신자 자격을 갓 부여 받은 우리에게는 아주 과분한 은총이었다.
지나고 나서 생각하니 참으로 영광되고 복된 일이었다. 독서 단 활동을 통해 성경을 좀 더 뜻 깊고 폭 넓게 바라보는 계기가 되었고 독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신앙인의 삶 또한 어떠해야 하는지도 어렴풋이 이해하게 되었으니 이 또한 하느님께서 우리 내외에게 주신 커다란 은총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이 모든 것이 순탄하게 준비 된 과정에는 20여 년 동안 우리를 위해 기도해주시고 마음 써주신 장모님의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는 생각이 듦과 동시에 장모님의 깊은 사랑이 예수님의 사랑과 겹쳐져 다가왔다.
삶 속에서 이루어지는 많은 일들은 우연인 듯 하지만 그 이면에는 누군가가 마음속으로 기도해 주고 염려해 주는 간절한 염원이 드러난 것임을 알게 된 소중한 계기가 되었다. 자신에게 주어지는 행운 조차도 자기 스스로의 노력만으로 이루어지는 경우 보다는 그 이면에 누군가의 도움과 애씀이 숨어 있음을 간과 해서는 안 된다는 새로운 교훈을 묵상을 통해 깊이 깨달았다.
우리 내외를 가톨릭 신앙으로 인도해 주시고 매일 매일의 삶 속에서 예수님께서 행하셨던 일들과 우리의 삶들을 대비 해보고 그분의 삶을 조금씩이나마 닮아가며 살아가려는 노력을 하게 된 것도 우리 내외의 자유의지 이전에 장모님의 따뜻한 사랑과 기도의 힘이었으리라고 확신해 본다. 조용히 묵상을 통해 내가 오늘 하루 말하고 행동하고 생각하는 모든 것 하나 하나가 누군가 에게는 희망과 기쁨이 되기도 하지만 원한과 실망을 제공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되돌아 보며 말과 행동을 더욱 조심스럽게 해야 하겠다는 다짐을 해 본다.
하루의 시작과 마침을 기도를 통해 나보다는 어려운 이웃과 세계인들에 대한 기도로 갈무리 하게 된 것도 장모님의 따뜻한 배려와 우리 내외를 향한 간절한 기도의 힘이 크게 작용 한 것이라고 믿고 싶다. 또한 매일 하루 일과의 시작을 성경 봉독을 통해 시작하게 해준 것도 내 자유의지 보다는 인간사는 세상에 온기를 불러 일으키게 하기 위한 방편으로써 사랑을 실천하는 자가 되라는 하느님의 암묵적인 명령이 아닐까 싶다.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는 말씀이 오늘따라 준엄하게 다가왔다.
(20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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