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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여행기,수필

(순천 1) 468 송광사 1

(순천 1)  468

 

송광사 1

 

조계산(884m)은 명산이다. 조계종을 대표하는 송광사와 태고종의 본산인 선암사를 품고 있는 조계산은 호남의 자랑이다. 명산에 명찰이 깃든다는 옛말이 거짓이 아니었다. 이름난 사찰을 두 곳이나 품고 있는 조계산은 영험한 기운이 산 전체를 타고 흐르며 뭇생명들에게 자연과의 합일을 강조하고 있으면서도 의연했다. 조계산의 원래 이름은 송광산 이었는데 송광사가 창건과 더불어 조계종(曹溪宗)의 중흥도량으로 자리 잡음으로써 조계산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아주 높은 산은 아니지만 기운만큼은 장하고 안온한 산이다. 주봉은 장군봉이다.

 

송광사는 서울, 수도권에서 찾아가기에 꽤 멀었다. 서울에서 꼬박 5시간이나 차를 타야 도착 할 수 있었다. 대찰답게 진입로 입구 주차장이 넓었다. 상점가들이 진을 치고 있었지만 송광사의 핵심공간과는 거리가 있고 사찰의 영역과는 구분되어 있어 좋았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매표소를 지나면 두 갈래 길이 나타난다. 차가 다니는 차로와 아늑한 오솔길이다. 오솔길 입구에 법정 스님께서 자주 이용했던 길(무소유 길)이라는 안내문이 신선했다.

 

길과 길을 가르는 계곡천이 제법 컸다. 가물어서 물은 많지 않았다. 커다란 느티나무들이 송광사의 상징수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10월 말임에도 아직 단풍은 거의 들지 않았다. 진초록의 나뭇잎들이 서서히 화려함을 접고 겸손한 색으로 몸 단장을 막 시작하고 있었다. 열흘 정도 지나면 송광사는 단풍의 향연으로 풍성할 듯했다. 길을 넓히고 전각을 수리하고 주변을 정돈하는 공사로 인해 어수선했다. 인간사는 세상에는 늘 있는 일이지만 한적한 산 속에서도 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 조금은 서글펐다.

 

법정스님께서 꽤 오랫동안 머무르셨던 불일암 가는 길 팻말이 선명했다. 늦은 시각이 아니었다면 먼저 둘러보고 송광사를 볼 생각이었는데 오후 5시가 다 되어 다음을 기약했다. 새로운 전각들이 수시로 새로 생겨나는 듯 사찰 배치도에 표시되어 있지 않은 건물들이 많았다. 사찰 배치도를 갱신하는 시간보다 건물들이 들어서는 속도가 더 빠른 듯했다. 불교는 마음을 비우고 무소유를 지향하는 종교이지만 신도들을 고려하여 새로운 건물들이 계속 지어지고 있는 듯했다. 종교의 본질인 자기구원과 홍익에 더하여 깨달음을 통한 자기완성의 종교인 불교가 대한민국을 한단계 업그레이드 해주길 간절히 간구했다.

 

(2021.10)

 

이 세상의 모든 일들은 어느 것 하나 그대로 사라져 버리는 것이 없다. 나쁜 말 한마디도 그대로 사라지는 법이 없이 어디론가 날아가 나쁜 결과를 맺으며 좋은 인연도 그대로 사라지는 법 없이 어디엔가 씨앗으로 떨어져 좋은 열매를 맺는 것이다.

(최인호, 산중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