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 3) 482
무령왕
여름을 향해 가는 5월, 계절의 여왕답게 공산성의 숲은 푸르렀고 바람은 상쾌했다. 쌍수정 있는 곳 아래 빈 공터는 본격적인 왕궁지 복원이 한창이었다. 규모가 작아 왕성이라 하기 뭐했지만 500년 도읍지를 떠나 이곳에 쫓겨 온 마당에 애시 당초 큰 규모의 왕성은 조성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쇠한 나라를 추스르려면 검소와 절제 그리고 와신상담의 자세로 국력을 기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나라마다 큰 위기에 처하면 구국의 영웅이나 리더가 나오는 법이다. 걸출한 무령왕(462-523, 재위기간 501-523)이 등장했다. 백제 부흥을 위해 지혜를 발휘했고 나라를 재 정비했다. 그의 노력이 있었기에 660년 백제가 멸망 할 때까지 130년을 지탱할 기초를 다질 수 있었다. 왕권을 강화하고 국방체계를 새롭게 정비하고 백성들을 돌보는데 정성을 쏟았다. 중국, 왜국과의 외교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도굴되지 않고 발굴된 무령왕릉의 유장품 등을 통해 백제의 왕들 중 생몰연대가 정확히 확인되는 왕으로 유명하다. 39세에 즉위, 62세에 서거했다. 무령왕릉 지석에는 “영동대장군 백제 사마왕”이라고 명기되어 있다.
무령왕릉이 있는 무령왕릉 전시관에 가면 발굴 당시의 무덤의 내부 모습을 실물로 전시하고 있다. 웅혼한 백제의 문화와 찬란한 아름다움을 지닌 유물들을 살펴 볼 수 있다. 쌍수정을 지나 진남루, 영동루, 광복루로 이어지는 산성 둘레 길이 운치가 있었다. 공주 구 도심을 조망하며 걷는 맛이 좋았다. 나지막한 언덕을 걷는 느낌은 왕성이라고 하기에는 빈약한 느낌이 들었으나 공주 도심을 두루 살필 수 있는 조망은 안온했다. 작은 왕궁 터에서 와산상담 했을 백제의 위정자들의 아픔 또한 느낄 수 있었다. 잔잔히 흐르는 금강은 가슴 속 울분과 불쑥 불쑥 솟아나는 분노를 다스려 주기에 좋았다.
대부분의 건축물은 근래에 복원된 것들이다. 공산성의 북문 역할을 하고 있는 공북루는 선조36년(1603)에 지어져 400여 년의 세월을 이어오고 있으면 조선시대 문루 건축의 상징성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공산성 높은 곳 금강이 잘 조망되는 곳에 위치해 조망을 즐기기에 좋았고 신 도심과 공주의 전반적인 지형을 세밀히 살필 수 있을 정도로 위치 선정이 탁월했다. 건축물 중 임류각이 단연 돋보였다.
(20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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