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여행기,수필 (213) 썸네일형 리스트형 (함양 12 ) 603 일두(一蠹) 정여창(鄭汝昌)선생의 생애와 사상 (함양 12 ) 603 일두(一蠹) 정여창(鄭汝昌)선생의 생애와 사상 함양여행을 마무리 하는 차원에서 정여창선생의 생애와 시상에 대해 간단히 요약정리한 내용을 공유드리고자 한다 조금 길지만 이 정도는 알아두시면 유익하지 않을까 싶다. 정여창선생은 젊었을 때부터 자신만의 독특한 학문과 언행, 덕행 등으로 선비 사회에서 크게 주목을 받았고 김굉필, 송석충, 김일손, 정광필 등과 주로 교류하였다. 22세에 성균관(成均館)에 입학, 성균관 유생(儒生)이 되었고 나라에서 여러 차례 벼슬을 내렸지만 매번 사양하고 학문 연구와 후학 교육에만 전념했다. 이후 1490년(성종 21) 학행으로 출사하여 소격서 참봉(昭格署參奉)이 된 그 해 가을, 문과 별시(文科別試)에 합격, 예문관 검열(檢閱)을 거쳐 세.. (함양 11 ) 602 일두(一蠹) 정여창(鄭汝昌) (함양 11 ) 602 일두(一蠹) 정여창(鄭汝昌) 함양 개평마을에 와서 일두 정여창 고택을 답사하고 나니 더더욱 그의 생애와 사상에 대해 알고 싶은 욕구가 솟구쳤다. 특히 일두 홍보관 문화 해설사의 1시간에 가까운 설명을 듣고는 잊혀진 인물이 새롭게 부상되고 있음을 느꼈다. 무오사화로 인해 그가 저술한 문집과 그와 관련된 상당부분의 기록들이 불타거나 없어졌기에 지금껏 사학자들에게는 크게 주목을 받지 못한 듯했다. 2004년 그의 사후 500년을 계기로 정여창과 더불어 동시대에 활동하였고 친한 지기였던 한훤당 김굉필에 대한 연구가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고 한다. 일두 홍보관에 전시된 내용과 그에 대해 기술된 서적과 글들을 통해 그의 생애를 간단히 개관해 보고자 한다. 두루 여러 기록과 글들을.. (함양 10) 601 일두(一蠹) 홍보관 (함양 10) 601 일두(一蠹) 홍보관 정여창 고택 입구에 일두 홍보관이 얼마 전 새로 들어섰다. 정여창 선생의 생애와 업적 등을 설명해주는 내용이 잘 정리되어 있어 무척 유익했다. 전시되어 있는 내용을 유심히 살펴보고 홍보관에 머물고 있는 해설사분께 이것저것 물어보니 귀찮아 하기는 커녕 오히려 많은 관심을 가져주는 것에 고마워하면서 시간이 얼마나 있으시냐고 물었다. 오늘 이곳이 마지막 일정이어서 시간은 충분하다고 하니 친절한 미소를 지으며 의자에 편히 앉으라고 하며 정여창 선생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1시간가량 상세히 설명해주었다. 덕분에 그 분에 대해 많은 것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피상적으로만 알았던 정여창 선생에 대한 이야기를 부분적이나마 상세하게 알고 나서는 중요한 사실을 지금.. 아무튼, 여행 책 출간 그동안 주말을 이용한하여 틈틈히 쓴 글을 책으로 엮었습니다. 남도 여행을 계획하시는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부끄럽지만 용기를 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함양 9) 600 정여창 고택 2 (함양 9) 600 정여창 고택 2 정여창 고택 사랑채의 기단을 보통의 건축물보다 높게 들어 올려 사랑채 건물 전체를 웅장한 느낌이 들도록 하여 남성의 영역임을 드러나게 한 것은 이해가 되었으나 석가산을 만든 의도는 존중 되어야 하나 현대인의 시각으로는 어딘지 모르게 답답하고 어색하게 느껴졌다. 크지 않은 마당에 그것도 누마루 전면에만 자리 잡은 석가산은 한옥 건축물 전체를 답답한 느낌으로 만들었다. 크게 자란 소나무로 인해 건축물이 치이는 느낌까지 들었다. 조성 당시는 지금과는 확연히 달랐겠으나 마당 크기는 제한되어 있기에 한계는 있지 않았을까 했다. 원래 이런 모습이라면 차라리 영양의 서석지 처럼 연못을 들였으면 어떨까 싶었지만 풍수지리 적으로 우물을 많이 팔 수 없었기에 조금은 이해가 .. (함양 8) 599 정여창 고택 1 (함양 8) 599 정여창 고택 1 개평(介坪)마을 지명은 두개의 개울이 하나로 모이는 곳에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해서 유래된 지명이라고 한다. 풍수지리 적으로 배 형상을 띄고 있는 마을 형태로 인해 마을 사람들이 사는데 꼭 필요한 5개의 우물 외에는 일절 우물을 만들지 않았다고 한다. 개평마을을 대표하는 정여창 고택은 선생이 세상을 떠난 지 100년이 지난 후에 후손들이 중건했다고 한다(1843년). 정여창 고택은 원래 대지 3천 평에 99칸 17동의 건물이 있었지만 현재는 사랑채, 안채, 문간채, 사당 등 12동의 건물만 남아 있다. 고택 입구 솟을대문 안쪽으로 홍살문과 함께 붉은색 목판에 흰 글씨가 쓰여 있는 5개의 편액이 눈길을 끌었다. 이 편액은 나라에서 하사한 충효 정려(旌閭, 충.. (함양 7) 598 함양 개평마을 2 (함양 7) 598 함양 개평마을 2 개평 마을은 영남 지역 대표적 마을의 하나로 유명한 마을이어서 100 년 이상 된 한옥도 많아 한옥 건축물을 답사하는 재미도 있고 정여창 가옥을 비롯한 다양한 형태의 여러 가옥을 살펴봄으로서 옛 사대부가의 생활상과 시대상 그리고 정신까지도 고스란히 살펴 볼 수 있는 유익함이 있었다. 옛 선조들의 삶을 통해서 현재를 되돌아보고 미래를 향한 마음가짐을 새롭게 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이곳 개평마을은 오래 전부터 하동 정씨와 풍천 노씨 그리고 초계 정씨 3개의 가문이 오래도록 뿌리를 내리고 살아오고 있다고 한다. 일두 정여창 선생, 옥계 노진 선생 등 역사적으로 위상이 높은 선생을 배출해 마을 분들의 자긍심이 대단했다. 많은 분들이 양반가의 위상을 지금도 지켜.. (함양 6) 597 함양 개평마을 1 (함양 6) 597 함양 개평마을 1 밝은 빛이 두루 비치는 곳이라는 함양(咸陽)은 이름 그대로 기운이 밝고 또 맑게 느껴지는 고장이다. 이웃하고 있는 거창과 산청 그리고 장수와는 또 다른 느낌이 들었다. 예로부터 좌 안동, 우 함양이라고 부를 만큼 많은 선비와 유학자를 배출한 고장으로 이름난 고장이기도 하다. 인걸은 지령이라고 하였듯이 주변으로 걸출한 지리산을 비롯해 기백산, 금원산 등 1천 m 대의 고봉이 즐비하고 들판 또한 잘 발달해 먹거리 풍부한 고장으로도 한 이름 하는 고장이 아닐까 싶다. 들과 산 그리고 계곡이 잘 발달한 덕분에 인심도 넉넉하고 두루 볼 곳 많은 고장이어서 매 번 올 때마다 새로운 것들을 발견하게 된다. 함양(咸陽)의 중심에 위치한 개평마을은 이번에 처음 찾았다. 늘 함양에.. 이전 1 2 3 4 5 ··· 27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