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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 10) 458 소수서원(紹修書院) 강학(講學)공간 1 (영주 10) 458 소수서원(紹修書院) 강학(講學)공간 1 소수서원 정문을 지나 나타나는 소나무 숲 군락이 대단했다. 수령 300여 년에서 천 년에 이르는 수백그루의 적송이 소수서원의 위상과 오랜 역사를 암묵적으로 이야기해주고 있는 듯했다. 여느 다른 서원과 달리 진입부가 남달랐다. 소수서원은 차지하고 있는 면적이 무척 큰 서원으로도 유명하다. 거의 27,000여 평에 이르는 면적은 오늘날의 대학 캠퍼스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듯했다. 서원 건축물들이 소나무 숲과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안온하면서도 서원 고유의 가능을 충실하게 해주고 있다는 인상을 주었다. 서원의 통상적인 구성인 강학공간과 제향 공간 그리고 휴식을 취하며 공부의 머리를 식혀주는 산책공간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한마디로 최고급 시..
(영주 9) 457 격물치지(格物致知), 소수서원(紹修書院) 2 (영주 9) 457 격물치지(格物致知), 소수서원(紹修書院) 2 조선의 통치이념으로 자리 잡은 성리학은 공자를 중심으로 한 유교의 한 갈래로 주희가 집대성 하였다고 해서 주자학이라고도 불린다. 소수서원이 주향으로 모시고 있는 분은 안향이라는 분으로 고려 말 사람으로 중국의 주자학을 조선에 최초로 보급하여 조선시대 유교(성리학)의 토대를 만든 분이다. 풍기군수 주세붕 선생이 평소 흠모한 분이기에 소수서원을 세우면서 주향으로 모셨다고 한다. 주자학(성리학)의 핵심개념은 도덕의 실천과 인격의 도야를 근간으로 격물치지(格物致知)를 통한 학문의 성취에 있는데 이는 사물의 이치를 연구하여 지식을 완전하게 하는 것으로 결국 사물의 본질에 집중하자는 것이다. 삼성전자 전 회장이었던 윤종용 회장이 직원들에게 강조했던 내..
(영주 8) 456 소수서원(紹修書院) 1 (영주 8) 456 소수서원(紹修書院) 1 소수서원은 부석사에서 무섬마을 가는 길 방향에 있다. 우리나라 서원의 효시이자 나라가 인정한 최초의 사액서원(賜額書院)이다. 사액서원이라 함은 나라로부터 책, 토지, 노비를 하사받고 면세뿐만 아니라 군 징집에서도 제외되는 특권을 가진 서원을 말한다. 더불어 임금께서 직접 이름을 지은 편액을 내려주는 서원을 말하는데 소수서원은 임금이 친필로 편액을 써서 내려준 서원이기에 그 의미가 무척 크다. 풍기군수인 주세붕이 세웠지만 사액서원으로 인정받은 것은 이어서 풍기군수로 부임한 퇴계선생의 노고가 컸다. 명망 있는 분의 주청이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나 싶었다. 그 당시 최초로 나라가 인정해주는 사액서원으로 지정된 것은 남다른 의미가 있다. 주지하다시피 한국의 670여 개..
(영주 7) 455 부석사 에필로그 (영주 7) 455 부석사 에필로그 부석사 조사당을 보러 오신 분들은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응진당과 자인당도 꼭 둘러보시길 권해 드린다. 특히 자인당 내부에 모셔져 있는 석조 삼존여래좌상을 감상하시고 석가여래좌상과 비로자나불좌상(보물)이 서로 다른 점을 꼭 보고 가셔야한다. 오래된 석조 불상은 남아있는 것이 많지 않기에 자세히 감상하시면 그 당시 석공의 빼어난 기술도 살펴볼 수 있다. 부석사는 전체가 거대한 종합 박물관으로 보아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볼 것과 감상 할 것이 무궁무진했다. 반 나절 정도로는 어림없을 정도로 많았다. 무량수전 서쪽 뒤편에 있는 선묘낭자의 전설이 전해지는 부석도 자세히 살펴보고 부석사로 이름 지은 배경 또한 찾아보는 즐거움도 누려보시길 권해 드린다. 바쁜 세상..
(영주 6) 454 부석사 조사당(祖師堂) (영주 6) 454 부석사 조사당(祖師堂) 무량수전 앞마당에서 조사당 가는 길에 홀로 서있는 삼층 석탑 있는 곳에서 잠시 쉬어가야 했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안양루와 그 멀리 보이는 소백산의 연봉들이 정물화처럼 다가왔다. 겨울 철 눈이라도 소복히 내리는 날이나 가랑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에 이곳에 서서 안양루와 소백산을 바라보는 풍광은 부석사에서 가장 빼어나지 않을까 싶었다. 부석사의 공간배치는 이런 조망도 상당부분 고려한 느낌이 들었다. 풍광이 너무 좋은 곳에서는 깨달음을 향한 구도심에 지장을 주지 않을까 했지만 한편으론 용맹정진 하다가 잠시 허허로운 자연과 소백산을 바라보다보면 문득 죽비로 내려치는 듯한 깨달음을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동시에 들게 했다. 조사당으로 향하는 언덕길이 꽤 운치가..
(영주 5) 453 법고창신(法鼓昌新) (영주 5) 453 법고창신(法鼓昌新) 부석사 무량수전은 그 자체만으로도 전통 건축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많은 것을 시사해 줄 정도로 대단한 건축물이다. 정면 5칸‚ 측면 3칸 규모로 기둥 사이의 거리가 크고 기둥도 높아 건물이 무척 크게 느껴졌다. 외관은 단순하게 처리하여 군더더기가 없도록 하였고 창살도 일정한 형태로 하나로 통일시켜 단순미를 극대화했다. 솜씨 좋은 장인들이 모여 걸출한 건축물을 탄생 시켰다. 내부 구조는 불상이 측면에 배치되어 있어 일반적인 대웅전과는 상이했다. 좌우 협시불도 없이 건물 규모에 맞게 설치한 거대한 크기의 불상은 소조아미타여래좌상이라고 하는데 이 역시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지붕은 팔작지붕으로 지붕의 경사는 이후에 지어진 건축물에 비하여 비교적 완만한 형태로 되어있다. 건..
(영주 4) 452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서서” (영주 4) 452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서서” 무량수전(無量壽殿) 앞마당에서 바라보이는 영주의 산과 들이 부석사의 정원처럼 느끼도록 만들어주고 있는 빼어난 풍광은 화려함이 아닌 지극한 안온함으로 느껴졌다. 안양루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는 극명했다. 무량수전 앞에 안양루가 없다고 상상해보면 무량수전 앞마당에 올라섰을 때 어떤 느낌이 들지는 분명했다. 탁 틔어 시원한 맛은 있겠지만 어딘지 모를 불안함과 허전함을 갖게 해 사람을 긴장하게 만들기 십상이지 않을까 싶었다. 적당한 크기와 높이로 만든 절제된 안양루는 제 2의 범종루가 되어 그 소임을 단단히 하고 있었다. 무량수전과 안양루 사이에 있는 석등은 무량수전과 함께 국보로 지정될 정도로 석등에 돋을 새김 한 조각이 아름다웠다. 상륜부만 일부 ..
(영주 3) 451 부석사 범종루 (영주 3) 451 부석사 범종루 소백산과 태백산 사이 봉황산(822m) 중턱에 자리 잡은 부석사의 일주문 편액은 태백산 부석사라는 이름을 달았다. 소백산보다는 태백산의 기운이 조금 더 장대하기 때문인지 싶었다. 입지로 보면 소백산 부석사 아니면 봉황산 부석사가 맞지 않았을까 싶었다. 무엇이든지 크고 좋은 것을 좋아하는 대륙기질의 민족성이 여기서도 발현되고 있는 듯했다. 천왕문을 지나 좀 더 오르면 잘 생긴 범종루가 나타난다. 정면 3칸의 팔작지붕으로 보이는 정면은 사실 정면이 아니다. 범종루는 사실 측면으로 앉아 있는 건축물이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지나치기 십상이다. 외관으로는 정면은 팔작지붕, 뒷면은 맞배지붕 형태인데 팔작지붕 형태의 측면을 정면으로 배치했다. 봉황산 산세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