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220) 썸네일형 리스트형 (영주 15) 463 무섬마을 외나무 다리 (영주 15) 463 무섬마을 외나무 다리 무섬마을을 감싸며 흐르고 있는 내성천을 사람들이 한 줄로 길게 열 지어 물이 거의 없다시피 한 강 위에 놓인 구불구불한 외나무다리 위를 걸어가고 있는 모습이 신산한 풍경을 연출했다. 연초록 잎을 틔우고 있는 산은 풍성함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지만 물이 줄어든 강은 하늘을 향해 원망의 손짓을 보내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불구불한 외나무다리 위를 걷는 사람들은 잠시 동심의 세계로 돌아간 듯 얼굴에는 잔잔한 웃음과 미소가 흘렀다. 외나무다리 중간 교차 지점에서 서로를 배려하며 양보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서로를 배려하는 모습은 도심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풍경이다. 사람은 자연에 머무를 때 넉넉해지고 여유로워진다는 것을 증명해 주고 있었다. 부드러운 미소와 .. (영주 14) 462 무섬마을 1 (영주 14) 462 무섬마을 1 무섬마을은 영주의 남쪽 끝에 자리 잡았다. 부석사를 지나 소수서원에서 차로 25분 정도 더 가야한다. 영주의 대표적 명승지가 영주의 남북을 꿰차고 앉아 있었다. 서울에서 아침 일찍 출발 부석사와 소수서원을 모두 둘러보고 나니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지만 이번에도 무섬마을을 보지 않고 지나치면 한동안은 찾아보기 어렵다고 생각해 둘러보기로 했다. 최근 가뭄으로 무섬마을을 감싸며 흐르는 강물이 쪼그라 들었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가물어 볼품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순간적으로 하였지만 그래도 보고 가는 것이 도리인 듯해 찾았다. 무섬마을은 어찌 보면 젊은이들에겐 부석사, 소수서원보다 핫 플레이스로 자리 매김 되어 있는 곳이다. 무섬마을 다리위에서 찍은 사진들을 인스타그램에 서로 경.. (영주 13) 461 소수서원(紹修書院) 에필로그 (영주 13) 461 소수서원(紹修書院) 에필로그 소수박물관을 나와 죽계 천을 끼고 걷는 오솔길 산책로가 압권이었다. 산책로를 걸으면서 경렴정을 비롯해 강학공간이 있는 곳을 바라보는 맛이 좋았다. 지금은 가물어 죽계 천에 물이 별로 없지만 비가 와서 물이 죽계 천에 가득차면 그야말로 도원경을 연출 할 듯했다. 소나무 숲을 배경으로 서있는 경렴정은 한 폭의 산수화를 보는 듯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간에 쫓겨 강학공간만 들러보고 가는 듯했다. 조선 중종37년(1542)에 창건되어 거의 500년의 역사를 지닌 소수서원은 명실 공히 한국 최초의 서원이기에 의미하는 바가 크고 여타의 다른 서원에도 많은 영향을 준 것은 사실이다. 미국이 수많은 대학의 힘으로 오늘날의 미국을 만들었듯이 한국의 서원은 조선 시대 고.. (영주 12) 460 취한대(翠寒臺) (영주 12) 460 취한대(翠寒臺) 강학공간 건너 죽계 천을 가로 질러 있는 경자바위와 취한대가 죽계 천을 바라보며 여유로운 모습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경렴정과 소통하며 한껏 자신의 자태를 뽐내고 있는 듯했다. 공부하는 유생들이 두 개의 정자에서 마주보며 시도 짓고 술도 한잔 하며 풍류를 즐기기에 아주 그만일 듯했다. 서원의 특성상 술은 뭐하지만 좋은 차를 마시면서 유유자적한 한 때를 보내기에는 아주 금상첨화일 듯했다. 가을철 은행나무가 노랗게 물들 때면 풍광 좋은 이곳은 별천지로 변할 듯했다. 공부하다 지친 몸과 마음을 산책하다 잠시 쉬어가는 곳으로도 아주 탁월해 보였다. 경자바위는 주세붕이 경(敬)이라는 한자어를 바위에 새겼다고 해서 경자바위라고 부른다고 한다. 공경과 근신의 자세로 학문에 집중하.. (영주 11) 459 소수서원(紹修書院) 강학(講學)공간 2 (영주 11) 459 소수서원(紹修書院) 강학(講學)공간 2 주자학(성리학) 창시자에 대한 존경과 사모의 표현이 남다른 점에 대해서는 그 당시는 성리학이 조선의 통치이념이었다는 사실을 인식한다면 이해할만 했다. 조선 시대에는 학문을 숭상하는 것은 최고의 선으로 여겼기에 모든 것의 우선이 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싶다. 경렴정 현판의 해서로 된 글씨는 퇴계선생이 썼다고 했다. 곧고 반듯한 글씨체에 힘이 넘쳤다. 퇴계 선생의 성정을 그대로 닮은 듯했다. 글씨체에서도 쓴 사람의 기운을 느낄 수 있다는 말이 사실인 듯했다. 강학공간의 건축물들을 하나씩 살펴보는 시간이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한 쪽은 수백 년 된 소나무 숲이 반대편은 시원한 계곡이 이웃하고 있어 밀집된 공간이 확장되어 시원함이 느껴졌고 건축물 하.. (영주 10) 458 소수서원(紹修書院) 강학(講學)공간 1 (영주 10) 458 소수서원(紹修書院) 강학(講學)공간 1 소수서원 정문을 지나 나타나는 소나무 숲 군락이 대단했다. 수령 300여 년에서 천 년에 이르는 수백그루의 적송이 소수서원의 위상과 오랜 역사를 암묵적으로 이야기해주고 있는 듯했다. 여느 다른 서원과 달리 진입부가 남달랐다. 소수서원은 차지하고 있는 면적이 무척 큰 서원으로도 유명하다. 거의 27,000여 평에 이르는 면적은 오늘날의 대학 캠퍼스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듯했다. 서원 건축물들이 소나무 숲과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안온하면서도 서원 고유의 가능을 충실하게 해주고 있다는 인상을 주었다. 서원의 통상적인 구성인 강학공간과 제향 공간 그리고 휴식을 취하며 공부의 머리를 식혀주는 산책공간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한마디로 최고급 시.. (영주 9) 457 격물치지(格物致知), 소수서원(紹修書院) 2 (영주 9) 457 격물치지(格物致知), 소수서원(紹修書院) 2 조선의 통치이념으로 자리 잡은 성리학은 공자를 중심으로 한 유교의 한 갈래로 주희가 집대성 하였다고 해서 주자학이라고도 불린다. 소수서원이 주향으로 모시고 있는 분은 안향이라는 분으로 고려 말 사람으로 중국의 주자학을 조선에 최초로 보급하여 조선시대 유교(성리학)의 토대를 만든 분이다. 풍기군수 주세붕 선생이 평소 흠모한 분이기에 소수서원을 세우면서 주향으로 모셨다고 한다. 주자학(성리학)의 핵심개념은 도덕의 실천과 인격의 도야를 근간으로 격물치지(格物致知)를 통한 학문의 성취에 있는데 이는 사물의 이치를 연구하여 지식을 완전하게 하는 것으로 결국 사물의 본질에 집중하자는 것이다. 삼성전자 전 회장이었던 윤종용 회장이 직원들에게 강조했던 내.. (영주 8) 456 소수서원(紹修書院) 1 (영주 8) 456 소수서원(紹修書院) 1 소수서원은 부석사에서 무섬마을 가는 길 방향에 있다. 우리나라 서원의 효시이자 나라가 인정한 최초의 사액서원(賜額書院)이다. 사액서원이라 함은 나라로부터 책, 토지, 노비를 하사받고 면세뿐만 아니라 군 징집에서도 제외되는 특권을 가진 서원을 말한다. 더불어 임금께서 직접 이름을 지은 편액을 내려주는 서원을 말하는데 소수서원은 임금이 친필로 편액을 써서 내려준 서원이기에 그 의미가 무척 크다. 풍기군수인 주세붕이 세웠지만 사액서원으로 인정받은 것은 이어서 풍기군수로 부임한 퇴계선생의 노고가 컸다. 명망 있는 분의 주청이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나 싶었다. 그 당시 최초로 나라가 인정해주는 사액서원으로 지정된 것은 남다른 의미가 있다. 주지하다시피 한국의 670여 개.. 이전 1 ··· 16 17 18 19 20 21 22 ··· 28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