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234) 썸네일형 리스트형 (경주 6 ) 596 무첨당(無忝堂)과 심수정(心水亭) (경주 6 ) 596 무첨당(無忝堂)과 심수정(心水亭) 역시 보물로 지정된 무첨당은 물봉골 길을 따라가다 우측 제법 높은 지대 위에 있다. 회재 이언적의 종가인 여강 이씨 종택의 별당으로 주로 제사를 지내는 제청의 기능 외에 독서와 휴식, 손님 접대와 문중 회의 등의 목적으로 주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규모는 아담했지만 누마루를 들여 격을 높였다. ㄱ자형태의 집으로 서쪽에 정면 1칸, 측면 2칸의 온돌방과 바로 이어서 옆에 정면 3칸, 측면 2칸의 대청, 정면 1칸, 측면 2칸의 온돌방을 두었고 서쪽 끝 온돌방 앞에는 정면 1칸, 측면 2칸의 누마루가 설치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누마루를 들일 경우 건물 전체를 상당부분 들여 올려야하기에 마당과의 단차가 컸다. 누마루가 있는 집과 아닌 집의.. (경주 5 ) 595 관가정(觀稼亭)과 향단(香壇) 2 (경주 5 ) 595 관가정(觀稼亭)과 향단(香壇) 2 향단은 여강 이씨가를 대표하는 건축물로 1540년 중종임금께서 경상도 관찰사로 부임하는 회재 이언적(1491-1553)이 병환 중인 노모를 돌볼 수 있도록 지어준 집으로 명문가의 품격과 격식을 갖추어 경주(월성) 손씨의 종가인 관가정과 대비 되었지만 우열을 가릴 수는 없었다. 개인이 지은 집과 임금께서 하사한 집의 차이도 있지만 규모 면에서도 차이가 컸다. 관가정과 향단 모두 기존의 기와집과는 다른 독특한 특징을 지닌 건축물이기에 보물로 지정된 듯했다. 여강 이씨 입향조에 해당하는 회재 이언적은 12세부터 외삼촌인 손중돈의 근무지를 따라 다니면서 학문을 익혔다고 한다. 외삼촌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 공부의 기초를 다지고 과거에 급제 후 .. (경주 4 ) 594 관가정(觀稼亭)과 향단(香壇) (경주 4 ) 594 관가정(觀稼亭)과 향단(香壇) 양동 마을 전체를 제한 된 시간에 둘러보기 어려워 그 중 몇 개의 대표적인 건축물을 집중해서 둘러보았다. 관가정(觀稼亭)과 향단(香壇), 무첨당(無忝堂)과 심수정(心水亭)을 둘러보며 오랜 세월을 견디며 잘 보전된 상태로 있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느낌을 받았다. 관가정은 세조때 이시애의 난을 진압하는데 공을 세운 손소의 아들 손중돈이 분가하며 지은 집(1504년)으로 관가정이라는 이름에는 곡식들이 자라는 모습을 보듯 자손들이 자라는 모습을 보는 집이라는 의미가 담겼다고 한다. 경주 손씨 입향 조에 해당하는 양민공 손소의 아들 우재 손중돈(1463-1529)은 김종직의 제자로 경상,전라,충청,함경 관찰사를 비롯하여 공조,이조 판서까지 두루 거칠 정.. (경주 3 ) 593 씨족 마을 (경주 3 ) 593 씨족 마을 처가입향(妻家入鄕)으로 맨 마지막에 들어온 경주(월성) 손씨와 여강(여주) 이씨 두 개의 성이 유교적 질서를 으뜸으로 두고, 또한 뛰어난 인재들을 배출하기 시작하면서 시가입향(媤家入鄕)으로 굳어 졌다고 한다. 두 개의 성을 중심으로 한 집성촌이 약 500 여 년 이어오고 있는 자체가 놀라운 일이고 우리나라 중요한 문화유산으로 오래도록 보존해야 할 마을이 아닌가 싶었다. 양동 마을은 조선 시대부터 이어져 오고 있는 씨족마을의 가장 오래된 사례 중 하나라고 했다. 양동 마을은 씨족 마을(집성촌)인 동시에 양반세거지로서, 두 성씨의 양반가와 이들을 보필하는 노비들이 공존하는 형태였다고 한다. 기와집 아래 보이는 초가집이 그들의 주 거주지 였고 시간이 흐르면서 일부 .. (경주 2) 592 500년을 이어 온 마을 (경주 2) 592 500년을 이어 온 마을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오랜 역사를 지닌 마을답게 500여 년을 이어오고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대단한 느낌이 들었다. 세계문화유산이 추구하는 지속가능한 발전을 잘 구현하고 있는 사례이기에 안동 하회마을과 더불어 세계문화 유산으로 선정되지 않았나 싶었다. 하회마을에는 영국 엘리자베스 여행이 다녀갔고 양동마을에는 영국 찰스 황태자가 다녀갔다고 하는데 한국의 뿌리를 알고 싶어 하는 영국이란 나라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어떤 분야든 가리지 않고 본질을 추구하는 나라가 선진국임을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500여 년의 오랜 역사의 켜가 쌓여 있는 양동 마을을 한마디로 정의하기가 싶지 않았다. 전반적인 느낌은 성리학을 근간으로 하는 조선.. (경주 1) 591 양동(良洞) 마을 (경주 1) 591 양동(良洞) 마을 어진 선비가 산다는 의미를 담은 경주 양동 마을은 안동 하회 마을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10번째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마을이다(2010.7). 10여 년 전 처음 찾은 이후 경주에 갈 때마다 꼭 다시 한번 방문해야지 하다가도 번번이 놓치고 돌아서곤 했다. 경주는 워낙 볼 곳 많은 지역이어서 늘 시간이 부족했다. 2024년 3월 동생네 가족들과 경주여행을 계획하고 양동 마을을 최우선으로 찾았다. 둘째 동생 제수씨가 경주가 고향이어서 봄맞이 여행으로 경주와 울진을 둘러보기로 하고 경주 역에 내리자마자 렌트카를 이용, 동생네 가족 일행과 함께 찾았다. 둘째 동생 내외도 이곳을 알기만 했지 제대로 둘러보기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은.. (구례 10) 590 화엄사 주지, 덕문 스님 (구례 10) 590 화엄사 주지, 덕문 스님 화엄사가 보유하고 있는 문화재가 무척 많았다. 대웅전 불상인 화엄사 목조비로자나 삼신불좌상을 비롯해 영산회괘불탱, 화엄사 각황전 앞 석등, 적멸보궁의 사사자삼층석탑, 각황전 앞 석등은 국보로 지정되어 있고 대웅전을 비롯해 화엄사 서오층 석탑과 동오층 석탑 등은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오래된 예술작품의 보고로 느껴졌다. 10여 점 이상의 국보,보물이 있는 사찰은 많지 않기에 화엄사의 격이 더욱 높게 느껴졌다. 화엄사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주지 덕문 스님 말씀이 인상적이었다. 시대 흐름에 부합하고, 더 역량 있고, 전통과 현대가 조화롭게 발전하는 화엄사를 만들어야 한다며 6 가지 과제를 목표로 내 걸었다. 그 중 눈에 띈 것 3가지는 본•말사 상생.. (구례 9) 589 화엄사 홍매 (구례 9) 589 화엄사 홍매 화엄사의 핵심공간을 둘러보며 문득 떠오른 생각이지만 화엄사의 전각뿐만아니라 배치 등에 적용된 치수(모듈)의 관계를 연구하는 것만으로도 박사 논문 정도는 거뜬하지 하지 않을까 했다. 사람의 눈에 거슬리지 않으면서도 안정감과 장중함을 주는 바탕에는 수치의 비밀이 숨겨져 있지 않을까 했다. 매년 수 많은 사람들이 찾는 화엄사는 오늘은 만개한 화엄사 홍매를 보기 위해 찾은 사람들이 더해져 무척 붐볐으나 시장 장터 같은 느낌은 들지 않았다. 사찰의 규모도 크고 홍매를 사진작가들처럼 오랫동안 보는 사람들은 한정되고 대부분 20여 분정도 사진을 찍고 감상하다가 돌아가기 때문이다. 100% 만개한 홍매는 아니었지만 오래된 전각들 사이에 핀 홍매는 한마디로 화려했고 애잔했다.. 이전 1 2 3 4 5 6 ··· 30 다음